부산시니어연합뉴스룸 뉴스실시간뉴스추천뉴스2026. 8. 4. 오전 2:49:34

이머시브(Immersive) 연극, ‘경성의 고독한 미식가들’ 전 회차 매진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 시작되는 1930년 경성으로의 타임슬립 커피와 디저트, 막걸리와 비빔밥까지 미식 체험에 실감 나는 추리 결합

편집국 기자
이머시브(Immersive) 연극, ‘경성의 고독한 미식가들’ 전 회차 매진
이머시브 연극 ‘경성의 고독한 미식가들’ 공연의 한 장면

두산아트센터와 돌곶이가 공동 기획한 이머시브 연극 ‘경성의 고독한 미식가들’이 개막 이후 전 회차 매진을 이어가며 개막 2주 차를 맞았다. 흥행의 배경에는 1930년대 경성을 재현한 서사뿐 아니라, 극장 전체를 하나의 세계로 바꾼 공간 연출과 관객 참여 방식이 자리하고 있다.

연극은 오랫동안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는 방식으로 소비됐다. 그러나 최근의 이머시브 공연은 관객에게 “어디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를 직접 선택하게 한다. 

이머시브(Immersive) 연극은 관객이 객석에 앉아서 무대를 바라보기만 하는 전통적인 연극과 달리, 관객이 공연의 공간으로 직접 들어가 배우와 같은 공간을 이동하며 이야기를 경험하는 참여·체험형 연극을 말한다. 

이야기를 따라 걷고, 배우와 대화하며, 때로는 음식을 먹고 게임에 참여하기도 하며, 관객은 더 이상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연을 함께 완성하는 존재가 된다.

이번 공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공간의 재발견’이다. 공연은 두산아트센터 Space111 무대에만 머물지 않는다. 매표소는 극 중 탐정이 운영하는 만둣가게로 바뀌고, 배우들의 분장실은 양장점이 된다. 공연장 뒤편의 화물엘리베이터는 총독부 경무국 고문실로 변하고, 로비와 복도는 배우와 관객이 추격전을 벌이는 경성의 거리로 사용된다.

관객에게 익숙했던 극장의 기능이 사라지고, 건물 전체가 극의 세계를 구성하는 공간으로 전환되는 셈이다. 티켓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공연이 시작되고, 관객은 객석에 도착하기 전부터 1930년대 경성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공연장의 의미 자체를 바꾼다. 기존 극장에서 공간이 이야기를 담는 그릇이었다면, 이머시브 공연에서는 공간 자체가 서사의 일부가 된다. 어느 복도를 지나고, 어떤 방에 들어가며, 누구를 따라가느냐가 관객이 경험하는 이야기의 내용까지 바꾼다.

이머시브 공연의 또 다른 특징은 관객의 선택이 공연을 변화시킨다는 점이다. ‘경성의 고독한 미식가들’에서는 관객이 특정 인물을 따라 이동하면서 서로 다른 사건과 정보를 접하게 된다. 한 번의 관람만으로 모든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인물의 동선을 따라 다시 관람하려는 수요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선택하지 않은 캐릭터의 서사와 비밀이 궁금하다”라는 반응과 함께 재관람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관객 사이에서는 ‘최소 세 번은 봐야 완성되는 작품’이라는 말도 나온다.

일반적인 연극에서 N차 관람은 좋아하는 배우나 작품을 다시 보기 위한 선택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머시브 공연에서는 재관람 자체가 새로운 서사를 발견하는 과정이 된다. 한 작품을 여러 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할 때마다 서로 다른 조각을 모아 전체 이야기를 완성하는 구조다.

관객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만큼 공연에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도 발생한다. 출연진 10명은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으로 구성됐다. 배우들은 정해진 대사를 연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객의 반응에 맞춰 즉흥적으로 대응한다.

특정 관객에게 지령을 전달하거나 1대1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있다. 관객이 예상과 다른 행동을 하면 배우 역시 이에 맞춰 상황을 이어간다. 같은 대본을 기반으로 하지만 매 회차 공연의 세부적인 모습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배우에게도 높은 집중력과 즉흥성을 요구한다. 이머시브 공연에서는 관객이 언제 어디에서 어떤 질문을 하거나 행동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배우와 관객이 일정 부분 공동 창작자가 되는 구조다. 완성된 작품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기존 공연과 달리, 현장에서 발생하는 우연과 반응이 공연의 일부가 된다.

‘경성의 고독한 미식가들’이라는 제목처럼 음식도 공연의 핵심 요소다. 그러나 작품에 등장하는 음식은 단순한 소품이나 관객 서비스가 아니다. 인물과 공간, 시대적 분위기를 연결하는 서사 장치로 사용된다.

찻집 ‘아카시’에서는 관객 전원에게 크렘브륄레와 커피가 제공된다. ‘연풍 양조장’에서는 막걸리와 안줏거리를 함께 나눈다. 공연이 진행되면서 관객은 게임에 참여하고 춤을 배우며, 다른 등장인물들과 비빔밥을 나눠 먹는다.

시각과 청각 중심이었던 공연 경험에 미각과 후각, 촉각이 더해지는 것이다. 특정 음식의 향과 맛은 당시 공간에 대한 기억을 더욱더 강하게 만든다. 특히, 음식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효과적이다. 같은 상에 앉아 음식을 나누는 순간 관객과 배우, 관객과 관객 사이의 거리가 줄어든다. 관람이라는 행위가 공동의 식사 경험으로 확장되는 셈이다.

관객 반응을 보면 작품의 매력은 재미있는 체험에만 있지 않다. 한 관객은 “연극이 밥 먹여주랴 했는데 정말 맛있게 먹여준다”라고 반응했지만, 또 다른 관객은 “유쾌한 체험형 연극으로 생각했는데 시대를 살아낸 인물들의 애틋한 로맨스에 예상보다 자주 울컥했다”라고 소감을 남겼다.

이는 작품이 이머시브 형식을 단순한 이벤트로 활용하지 않고, 인물들의 관계와 시대적 서사를 전달하는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1930년대 경성은 근대적 도시문화가 형성되는 동시에 식민지 현실이 존재하던 공간이다. 카페와 양장점, 음식과 유흥이 발전했지만, 그 이면에는 억압과 불안, 개인의 선택과 생존이 교차했다.

작품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추리와 로맨스, 미식 체험을 결합한다. 관객은 음식을 즐기다가 사건의 단서를 발견하고, 배우를 따라 이동하다가 인물의 비밀과 감정을 마주한다. 체험의 재미가 관객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고, 그 안에서 서사가 감정을 움직이는 구조다.

이번 공연은 공연장의 물리적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도 던진다. 극장의 매표소와 로비, 복도, 분장실, 화물엘리베이터는 평소에는 공연을 지원하는 부수적인 시설이다. 관객은 대부분 이런 공간의 기능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성의 고독한 미식가들’은 이 장소들을 모두 이야기 속 장소로 바꿨다. 관객은 자신이 익숙하게 지나던 공간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는 새로운 공연장을 만드는 대신 기존 건물의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무대 확장은 시설 증축이 아니라, 공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라는 점을 보여 준다.

공연예술에서 공간은 단순히 작품을 담는 장소가 아니라, 관객의 감정과 행동을 설계하는 중요한 요소다. 같은 장면도 넓은 객석에서 바라볼 때와 좁은 방 안에서 배우와 마주할 때 전혀 다른 긴장감을 만든다.

개막 이후 이어진 전 회차 매진은 이머시브 공연에 대한 관객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오늘날 관객은 콘텐츠를 단순히 소비하기보다 직접 참여하고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을 선호한다. 공연 역시 완성된 서사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관객이 자신만의 경험을 만들어 갈 수 있는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

특히, SNS 시대에는 동일한 공연을 본 사람들도 서로 다른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는 이 인물을 따라갔다”, “나는 이 장면을 봤다”, “다른 동선에는 무엇이 있었을까”라는 대화 자체가 공연 이후의 콘텐츠가 된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관객들 사이에서 이야기와 추리가 계속되고, 이것이 다시 재관람으로 이어지는 순환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한 번의 관람으로 전체를 이해할 수 없도록 설계된 작품은 공연 창작에도 새로운 기준을 요구한다. 각 동선의 이야기가 독립적인 재미를 가져야 하면서도, 여러 조각이 모였을 때 하나의 큰 서사로 연결되어야 한다. 특정 인물을 따라간 관객이 중요한 내용을 놓쳤다는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재관람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 정보를 의도적으로 숨기는 것과, 각각의 관람 경험 자체가 완결성을 갖도록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따라서, 이머시브 공연의 성공은 공간의 독특함이나 참여 방식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여러 번 볼수록 새로운 의미가 발견되는 서사적 밀도와 배우들의 안정적인 수행 능력이 함께 뒷받침되어야 한다.

‘경성의 고독한 미식가들’은 박해림 작가의 서사와 김태형 연출의 공간 구성,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 배우 10인의 연기로 완성됐다. 공연은 오는 8월 9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이어진다.

이 작품의 흥행은 하나의 인기 공연을 넘어 공연예술의 관람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객석은 사라지고, 복도가 거리로 변하며, 관객은 인물을 따라 걷고 직접 음식을 먹는다. 같은 공연을 본 사람도 각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극장을 나온다.

극장이 더 이상 무대와 객석만으로 구성된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도 새롭게 드러난다. 매표소와 분장실, 화물엘리베이터까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면 공연의 경계는 건물 전체로 확장된다.

‘경성의 고독한 미식가들’이 보여 주는 새로운 공연의 핵심은 관객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 주는 데 있지 않다. 관객이 스스로 움직이고 선택하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하게 하는 데 있다. 연극을 ‘보는 경험’에서 ‘들어가 살아보는 경험’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것이 이번 공연이 던지는 가장 흥미로운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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